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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읽기] 요새 읽고 있는 책

누가 재미로 원서를 읽냐고? 저요. 나는 가끔 영어 원서를 읽는다. 재미로 읽는다. 졸업한 지 백 년이 되어 이제는 영어를 쓸 일이 딱히 없다. 근데 수능 공부는 열심히(?) 해서 영어를 읽는 건 제법 익숙하다. 물론 수능 영어랑 원서랑은 그 간극이 넓디넓어 같은 선상에 두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주장한다. 수능 시험도 봤는데 원서 읽기 정도는 껌이라고. 대체 뭔 소리냐고? 책을 잘 고르면 된다. 책은 재미로 읽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책을 통해 무언갈 배울 때도 있지만 배움의 주 수단으로 책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내게 책은 재미 요소다. 그러니 재미있는 책을 보면 된다. 처음에는 쉬운 책이 재미있다. 오롯이 한 권의 책을 읽어냈다는 즐거움이 상당히 크다. 내가 책을 읽던 곳은 도서관의 어린..

2024.11.09

[책]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_박서련

박서련의 소설은 다 재밌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재작년이었고, 《마르타의 일》이었다.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에 홀려 박서련의 모든 작품을 읽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단행본을 출간되지 않은 단편 등을 찾아 읽는 것까지는 여력이 없어 못하지만, 《더 셜리 클럽》, 《호르몬이 그랬어》,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를 신나게 읽었고, 이제 《체공녀 강주룡》과 《제사를 부탁해》만 남았다. 엊그제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까지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된 건 표제작 때문이다. 이 작품을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었는데 그 사실을 홀랑 까먹고 이 책이 나왔을 때 제목만 보고 읽은 책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오다가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

2023.03.17

[책] 너무 예쁜, 개같은_최보윤 시집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연 제목이었다. 《너무 예쁜, 개같은》이라니. 책날개에 따르면 최보윤 시인은 조선일보 시조 부분으로 등단했다. 잠깐, 시조라니. 학교 다닐 때 국어를 딱히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특히 시조는 아니 좋아하였거늘. 글자수를 세어야 하는 규칙이 너무도 요상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조라니. 이래놓고, 실은 얼마 전에 이나영의 《언제나 스탠바이》를 읽었다. 노란 표지에 제목만 보고 빌린 거라 꿈에도 몰랐다. 시조일 줄이야. 실은 읽으면서도 몰랐다. 읽고 있는 게 시조라는 걸. 요새 시는 산문처럼 긴 게 많은데 짧고 담백해 좋다고만 생각했다. 한참 읽다가 알았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시조라니. 구닥다리 규칙 지키기에 함몰되어 재미없는 소리나 하는 게 시조인 줄 알았건만, 자..

2023.03.13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정지우

헷갈렸다. 작가이자 변호사라는 이력이 또 있을 줄이야. 작가로 먼저 데뷔한 뒤 변호사가 된 사람을 살면서 두 명이나 보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건 정소연 작가였다. 그럼 정지우 작가는 또 누구람. 이렇게 헷갈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당연히 책을 한 권도 읽어본 게 없기 때문이다. 정소연 정지우 둘 다. 특이한 이력에 인터뷰 기사 정도로 알고 있을 테다. 뭐, 유튜브나 팟캐스트, 혹은 블로그 글을 봤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주제이자 결론은 제목이다. 그러니 우리 이제 조금 가볍게 일상적으로 꾸준히 써 보는 게 어때? 쓰는 법을 말하는 1부와 쓰는 이유를 말하는 2부는 잘 안 읽혔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도 밝혔듯 정답이 없는 글쓰기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물 위의 기름처럼 둥둥 떠 있어 걷어내고 읽느라 조금 거..

2022.05.07

[책] 가능주의자 - 나희덕

1부는 유희다. 시적 유희. 2부에서 시작된 현실 비판은 3부에 이르러 폭발한다. 4부 시작과 동시에 가능주의자를 자처하는 간극에 순간 오잉, 했지만 너무 바닥으로 박아버린 우리를 희망이 닿을 수면까지 끌어올리려 애쓴다. 물론 마지막은 헤어짐으로 끝을 맺지만. 에서처럼 나희덕은 나의 입장과 너의 입장을 두루 살피고 양극단 사이에 서서 양 끝을 두루 살피고 그럼에도 눈치 보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한다. 시가 주는 불편함이 있다. 사회 문제나 재난을 다뤄서가 아니다. 오병이어나 예수 같은 단어도 아니다. 소크라테스를 운운하고 울프를 선망해서도 아니다. 나조차 몰랐던 내 감정을 끌어내어 글로 써 버릴 때다. 타인이 나보다 내 감정을 정확히 안다는 점에 불편함을 느낀다. 동시에 ..

2022.05.04

[책]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박서련 일기

황정은의 를 읽고 그녀의 글이 너무 좋아 백의 그림자를 읽게 되었다. 산문이 좋아진지도 벌써 삼 년째.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려니 팍팍해진 탓에 가벼운 혹은 다정한 글이 필요했나 보다. (황정은의 일기는 그닥 가볍지는 않았지만) 일기라니 박서련의 일기라니 바로 집어 들었다. 읽었던 박서련의 모든 작품이 좋았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의 책 중 처음으로 읽은 게 이었다. 추천 받아 읽은 장편소설이었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당연히 다음 작품인 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후루룩 읽었고 는 다소 버벅대며 읽었지만 는 동네 산책 나갔다가 심지어 남의 동네 놀이터에서 그림자 방향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은 아직 못 읽었지만 무척 기대되고 는 곧 읽을 예정이다. 무슨 말이냐면 나도 내 일기가 제일 재미있다는 말..

2022.04.24

[책] 창작과 농담 - 이슬아 인터뷰집

황소윤과 이슬아가 서로 인터뷰하는 느낌이라 둘을 모두 들여다보게 되는 인터뷰였다.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이란 네이밍에 걸맞는 김규진이라는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유부녀로서 레즈비언으로서 겪어가고 있는 이야기가 즐거웠고, 장기하에 대한 호감도가 낮았는데, 이는 매체에서 그를 다루는 방식 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독립에는 경제적뿐만 아니라 정서적 독립도 중요하다는 메시지, 조직 생활과 의젓함에 대한 통찰, 글 배우는 할배 없다는 관찰력, 1년 전에 찍은 영화로 시상식장에 다니며 옛날과 오늘날의 간극을 사는 강말금과 김초희의 이야기는 몽땅 좋았다. 참을성 많은 내향인 아이의 성장담에 이은 '분출의 시기'까지 매력적인 말줄임표 가득한 오혁의 인터뷰. 창작과 농담은 술술 읽히는 즐거운 인터뷰집이었다. 만 읽으..

2022.04.14

[책] 이다음 봄에 우리는 - 유희경

분노나 화가 없다. 짜증이 없다. 오랜만이다. "죽었으면 좋겠어(느린 마음에 대하여 중)"라고 외쳐도 화가 없다. 내내 애닯다. 쓸쓸함이 가득해 겉으로만 따스한 봄날에 어울리는 시집이었다. 역시 아침달 시집. 반복 어구 읽는 재미 말맛 시 하면 이런 것만 떠올렸다. 무엇보다 짧은 길이에 혹해서 집어 들었는데 모닝 페이지를 툭 잘라 넣은 것 같이 마침표 없는 문장들을 늘어놓고 무슨 말인지 이해해봐, 하는 양 사람을 놀리나 싶은 앞뒤 안 맞는 말들이 참 싫었다. 정갈하고 주어 술어 딱 맞아 떨어져도 말 같지 않은 글들이 많은 요즘, 두서없고 무슨 말이지 싶다가도 끄덕이게 되는 글이 그리웠다. "조금이라는 부사를 생각"하는 니트(니트 중)처럼.

2022.04.13

[책] 百백의 그림자

황정은의 소설가의 2010년 첫 장편소설 가 복간되어 2022년 다시 출간되었다. 황정은 작가의 작품과는 초면이라 단편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읽게 된 백의 그림자는 난해해 난처했다. 내용도 잘 모르겠고 상황도 이해가 안 되는데 말투가 너무 다정했다. 아주 짧은 대화가 조곤조곤 다정하게 반복되어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따라 읽게 되었다. 그림자가 어쨌다고? 하다가도 인상 쓴 이마에 힘이 스르륵 풀리곤 했다. 그림자는 모르겠고 백의 그림자는 더더욱 모르겠고 그저 은교씨랑 무재씨가 서로에게 다정하며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책 말미에 있는 다시 쓰는 후기에서 황정은 작가는 이 글의 제목을 전야前夜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야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는 뭔가 심상한 밤이 연상된다. 다음 날이면 벌어질 놀랄..

2022.04.07

[책]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우연히 보게 된 책이었다. 라는 독특한 제목에다가 겉표지도 매력적이어서 뽑아 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빌릴 때에는 뒷표지도 읽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내가 봤을 때 나는 틀림없이 뒷면에 적힌 유명 작가들의 추천의 말에 혹해서 빌렸을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환상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수식어가 붙은 아르헨티나의 마리아나 엔리케스가 이 책의 작가이다. 는 공포 소설집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환상과 공포가 버무려진 책인데, 빌려 놓고 한참이 지나 읽기 시작한 나머지 장르를 잊고 읽었다. 공포 요소는 있고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와 상황들이 숱하게 나오지만 장르 소설이라기보다는 일반 단편 소설이라고 느꼈다. 아마도 주어진 상황이나 소재, 사건의 배경, 주인공의 처지 등이 지극히 현실적이었..

202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