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의 소설은 다 재밌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재작년이었고, 《마르타의 일》이었다.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에 홀려 박서련의 모든 작품을 읽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단행본을 출간되지 않은 단편 등을 찾아 읽는 것까지는 여력이 없어 못하지만, 《더 셜리 클럽》, 《호르몬이 그랬어》,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를 신나게 읽었고, 이제 《체공녀 강주룡》과 《제사를 부탁해》만 남았다. 엊그제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까지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된 건 표제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때문이다. 이 작품을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었는데 그 사실을 홀랑 까먹고 이 책이 나왔을 때 제목만 보고 읽은 책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오다가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누군가 내가 모르는 단편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아, 나 이 책 안 읽었구나!
개인적으로 돌봄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내가 목격한 돌봄 노동을 하는 이들이 하는 행위는 단순 돌봄 수준이 아닌 보필, 시중 수준이었다. 최소한이라는 건 정말 좋게 말했다는 뜻이다. 그게 누구든 그 대상을 거의 모시고 사는 듯했다. 쩔쩔맸고 끌려다녔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박서련의 이 작품집에는 그런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는 총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렸다. 앞의 다섯 작품에서 주인공은 아들을 보필하고, 딸을 보필하고, 남편을 보필하고, 시어머니를 보필하고, 엄마를 보필한다. 마지막 두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을 보필하며 소설을 쓴다.
그들 중 누군가는 결국 자신의 삶을 택하고 누군가는 주저 앉고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원래 장편을 선호하는 편인데다 연달아 장편소설을 읽다 보면 간만에 펼친 단편은 뭔가 덜어낸 느낌이 들어 못내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박서련 단편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편 한 편이 꽉 채운 내용과 결말로 늘 만족감을 준다. 웬만한 장편을 읽어낸 듯한 만족감 말이다.
박서련은 왜 이리 소설을 잘 쓰는 걸까.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삶을 저렇게 깊게 들여다 보고 예리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까.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은 사람, 정말 오랜만이다.
다음 작품들도 너무 기대된다. 정주행이 무너지는 아픔을 딛고 눈에 보이는 족족 읽어왔는데 언젠가 꼭 《체공녀 강주룡》도 읽을 거다. 나만 안 볼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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