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연 제목이었다.
《너무 예쁜, 개같은》이라니.
책날개에 따르면 최보윤 시인은 조선일보 시조 부분으로 등단했다.
잠깐, 시조라니.
학교 다닐 때 국어를 딱히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특히 시조는 아니 좋아하였거늘. 글자수를 세어야 하는 규칙이 너무도 요상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조라니. 이래놓고,
실은
얼마 전에 이나영의 《언제나 스탠바이》를 읽었다. 노란 표지에 제목만 보고 빌린 거라 꿈에도 몰랐다. 시조일 줄이야.
실은
읽으면서도 몰랐다. 읽고 있는 게 시조라는 걸. 요새 시는 산문처럼 긴 게 많은데 짧고 담백해 좋다고만 생각했다. 한참 읽다가 알았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시조라니.
구닥다리 규칙 지키기에 함몰되어 재미없는 소리나 하는 게 시조인 줄 알았건만,
자연을 노래하며 풍월을 읊는 줄 알았건만,
이나영의 시조에는 제목처럼 사회생활, 일상, 도시, 인간관계 등 에세이 소재라고 할 법한 이야깃거리들을 시조라는 형태로 녹였다. 냉장고를 파먹고 월세를 걱정하는 이런 게 요즘 시조의 모습이구나, 학문하시는 분들 용어로는 현대시조라고 하겠구나, 싶었다.
그 책 덕분에 요즘 시조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눈에 익혔달까.
최보윤의 《너무 예쁜, 개같은》이 시조 시집인가, 아닌가. 모든 시가 완벽히 시조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다. 해설을 읽어보니, 시조라는 틀에 자유시를 끼얹었다고 하더라. 외양상 정형성을 띤 작품도 아닌 작품도 리듬감이 살아 있고 말맛이 살아 있었다. 검색해 보니 절판이라 아쉬웠다. 시집 서점에 가면 있으려나. 그것보다 계속 작품은 쓰고 계시려나.
아무리 절판이라도 여기에 시를 마구 올리는 건 싫다. 도서관 가면 볼 수 있으니 기억날 때마다 들여다보기로 한다. 즐겁게 읽고 괜히 착잡해졌으니 재미있는 시를 하나만 떠올려 보면,
<시조를 읽으시나요>
3장 6구 4음보의 전형적인 이 시조를 읽는 순간, 뜨끔했다. 나도 글자 수만 맞추고 시조라 우기려고 했는데. 사람은 다 똑같다더니 시인과 내가 닮은 구석이 있을 줄이야.
옛 틀에 지금 감성을 담으니 그냥 요즘 시가 된다는 것.
언뜻 당연한데 간과했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신경 써서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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